전체 글5 전화번호부 책은 왜 사라졌을까 사라지는 물건과 생활문화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 오늘은 한때 모든 가정과 사무실에 놓여 있던 전화번호부의 등장 배경과 사용 방식, 전성기와 쇠퇴 과정을 살펴보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전으로 종이 전화번호부가 우리 생활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와 그 변화가 통신문화에 미친 영향을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전화번호를 찾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하다. 스마트폰에서 연락처를 열고 이름을 검색하면 저장된 전화번호가 바로 나타난다. 연락처에 번호가 없다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업체나 기관의 전화번호를 찾을 수도 있다.전화번호를 직접 외우는 일도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 스마트폰이 전화번호를 대신 기억해주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전화.. 2026. 8. 10. 다이얼 전화기는 왜 지금의 버튼식 전화기로 바뀌었을까 사라지는 물건과 생활문화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 오늘은 한때 가장 익숙한 전화기였던 다이얼 전화기에서 버튼식 전화기로 발전한 이야기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전화기를 떠올리면 대부분의 사람은 스마트폰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화면을 터치해 전화번호를 누르고 상대방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연락처에 이름만 저장해 두면 번호를 직접 외울 필요조차 없다.하지만 지금의 전화기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숫자를 입력하는 방식부터 달랐다.전화기에 숫자 버튼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동그란 숫자판을 손가락으로 돌려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숫자 하나를 누르는 대신 손가락을 구멍에 넣고 끝까지 돌린 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2026. 8. 10. 공중전화는 언제부터 우리 생활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을까 사라지는 물건과 생활문화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 오늘은 공중전화의 등장과 사라지는 여정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지금은 휴대전화가 없는 하루를 상상하기 어렵다. 집을 나서면서 휴대전화를 챙기는 것은 지갑이나 열쇠를 챙기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으면 장소를 따로 찾을 필요도 없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누르거나 메신저를 열면 바로 연락할 수 있다.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집이나 직장에 전화가 설치되어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고, 외출 중인 사람에게 연락하려면 정해진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설이 바로 공중전화였다.길을 걷다가 전화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주변.. 2026. 8. 9. 삐삐는 왜 등장했고 스마트폰 시대에 사라졌을까 사라지는 물건과 생활문화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 오늘은 삐삐(무선호출기)의 등장 배경과 사용 방식, 전성기와 쇠퇴 과정을 통해 스마트폰 시대에 사라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기술 변화가 통신 방식에 미친 영향을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누구에게든 바로 연락할 수 있다. 전화는 물론이고 문자, 메신저, 영상통화까지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만 해도 누군가에게 연락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전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허리에 작은 기계 하나를 차고 다녔다. 바로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호출기다.한때는 학생부터 직장인, 의사와 사업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삐삐를 사용했다. 누군가에게 연락하려면 먼저 삐삐로 호출한 뒤 상대.. 2026. 8. 9. 건륭제 이야기 건륭제(1711년~1799년)는 청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 1735년 ~ 1796년)로 입관(入關) 뒤 중국 대륙을 실질적으로 통치한 네 번째의 중국 청나라 황제이기도 하다. 휘는 홍력(弘曆), 묘호는 고종(高宗), 시호는 순황제(純皇帝)이며, 연호는 건륭(乾隆)이다.옹정제의 넷째 아들이며 시녀로서 옹정제의 후궁 출신인 효성헌황후 뉴호록씨(孝聖憲皇后 鈕祜祿氏)의 소생이다. 어릴 때부터 제왕으로서의 자질이 보여 할아버지 강희제와 아버지 옹정제에게 인정을 받았고 1735년, 옹정제가 급사하자 저위비건법에 따라 황위에 올라 먼저 만주족·한족 대신들의 갈등을 조정하며 내치를 다진 후 북경에 원명원과 같은 서양식 건물을 짓도록 허락하였고 중국 역사상 최대의 대편찬 사업인 《사고전서》를 편찬하여 묻혀 있던 많은 고.. 2026. 8. 6. 이전 1 다음